칩은 어떻게 설계할까? IC 설계가 하는 일
한마디로 칩은 먼저 컴퓨터에서 설계하고 여러 번 검사한 뒤에야 팹에 넘겨 만든다. IC 설계(IC는 집적회로, 즉 칩의 정식 명칭이다)가 맡는 것이 바로 이 단계다. 칩이 무엇을 할지 정하고, 회로를 기술하고, 제대로 동작하는지 확인한 뒤, 층층이 패턴으로 배치해 포토마스크로 만들도록 넘긴다.
설계 업무와 팹 업무가 어떻게 다른지는 ‘IC 설계(VLSI)와 팹 업무는 무엇이 다를까?’에서 다뤘다. 이 글은 설계가 한 단계씩 어떻게 진행되는지 설명한다.
칩 하나를 설계하는 단계는?
집을 짓는 것과 비슷하다. 먼저 요구 사항을 정하고, 도면을 그리고, 검토하고, 승인이 나야 착공한다. 디지털 칩 설계는 대략 다음과 같다.
- 사양: 무엇을 하고, 얼마나 빠르고, 전력을 얼마나 아낄지 정한다.
- 동작 기술: 하드웨어 기술 언어로 회로가 할 일을 기술한다.
- 검증: 회로의 동작이 사양과 같은지 확인한다.
- 합성: 논리 게이트로 바꾼다.
- 배치 배선: 각 논리 게이트를 어디에 놓고 배선을 어떻게 연결할지 정한다.
- 검사: 제조할 수 있는지, 타이밍이 맞는지 확인한다.
- 테이프아웃: 팹에 넘겨 포토마스크를 만든다.
실제로는 앞 단계로 돌아가 여러 번 고치는 일이 많다.
사양에는 무엇을 정하나?
사양은 칩의 ‘요구 사항 목록’이다. 어떤 기능을 하는지, 얼마나 빨리 동작하는지, 전력을 최대 얼마나 쓰는지, 면적이 얼마인지를 정한다. 칩이 클수록 웨이퍼 한 장에 들어가는 개수가 줄어 칩 하나의 가격이 올라간다.
이 항목들은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빠르게 하려면 회로를 더 넣고 전력을 더 써야 할 때가 많고, 전력을 아끼려면 조금 느려질 수 있다. 작은 배터리 하나로 오래 버텨야 하는 제품이라면 저전력이 최우선이다.
회로는 어떻게 ‘쓰는’가?
스마트폰 칩 하나에는 트랜지스터가 백억 개 넘게 들어 있어(트랜지스터란?) 하나하나 그릴 수는 없다. 그래서 디지털 회로는 대부분 하드웨어 기술 언어(HDL, hardware description language)로 회로의 동작을 텍스트로 기술한다.
작성하는 방식은 프로그래밍과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다. 프로그램은 순서대로 한 줄씩 실행되는 반면, 하드웨어 기술 언어가 기술하는 것은 회로이고, 회로의 여러 부분이 동시에 동작한다.
대부분의 디지털 회로는 일정한 박자에 맞춰 동작하는데, 이 박자를 클록(clock)이라 한다. 메트로놈과 같다. 흔히 쓰는 기술 방식은 박자마다 데이터가 어디서 와서 어떤 연산을 거쳐 어디에 저장되는지를 명확히 적는 것으로, 이를 흔히 RTL이라 부른다.
검증에 왜 그렇게 많은 노력이 드나?
검증은 기술한 회로가 사양대로 동작하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검증이 설계 업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고 흔히 말하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다.
- 경우의 수를 다 시험할 수 없다: 입력의 조합에 회로 안에 기억된 상태까지 더하면, 하나하나 시험하기에는 너무 많다.
- 오류는 드문 상황에 숨어 있다: 평소에는 다 맞다가 두 가지 일이 마침 동시에 일어날 때만 틀린다.
- 놓치면 대가가 크다: 테이프아웃 뒤에 발견하면 설계를 고치고 포토마스크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흔히 쓰는 방법은 세 가지다.
- 시뮬레이션: 컴퓨터에서 회로에 갖가지 입력을 넣고 출력이 맞는지 본다. 문제를 많이 내서 시험을 보는 것과 같다.
- 정형 검증(formal verification): 문제를 내는 대신, 어떤 성질이 반드시 성립함을 수학적으로 증명한다. 예를 들면 ‘이 두 신호는 절대 동시에 켜지지 않는다’는 식이다.
- 실제로 돌려 보기: 회로를 다시 써넣을 수 있는 칩(FPGA)에 설계를 올려 실제로 동작시켜 본다.
기술한 동작은 어떻게 회로가 되나?
이 단계를 합성(synthesis)이라 한다. 설계 소프트웨어가 기술된 동작을 논리 게이트로 이루어진 회로로 변환한다. 논리 게이트는 트랜지스터 몇 개로 이루어진 작은 회로로, 예를 들면 ‘두 입력이 모두 1일 때만 1을 출력한다’ 같은 것이다(메모리와 프로세서는 무엇이 다를까?).
변환에는 셀 라이브러리(cell library)를 쓴다. 미리 설계하고 검증해 둔 작은 블록들로, 갖가지 논리 게이트와 0이나 1 하나를 기억하는 작은 회로가 들어 있다. 블록은 모두 높이가 같고 폭만 달라서, 블록 쌓기처럼 한 줄씩 나란히 배치할 수 있다. 같은 논리 게이트라도 공정 세대가 바뀌면 크기와 속도가 달라지므로, 셀 라이브러리는 특정 팹의 특정 세대 공정에 맞춰 만든다.
무엇을 어디에 놓고, 배선은 어떻게 하나?
합성 결과는 ‘무엇이 무엇과 연결되는지’를 적은 목록으로, 아직 위치는 없다. 배치 배선(place and route)은 이 목록을 실제 패턴으로 바꾼다.
- 플로어플랜(floorplan): 큰 회로 블록을 어디에 둘지, 전원을 어디서 공급할지 정한다.
- 배치(placement): 논리 게이트를 배치한다. 서로 자주 연결되는 것은 가까이 둔다.
- 클록 분배(clock tree): 박자가 칩 곳곳에 거의 동시에 도착하게 한다.
- 배선(routing): 여러 층의 배선이 입체 교차로처럼 겹쳐 있고, 배선은 이 층들 사이를 오가며 지나간다.
이 작업을 마치면 층마다 고유한 패턴이 생기고, 이를 모두 겹친 한 세트를 레이아웃(layout)이라 한다. 이후 층마다 적어도 한 장의 포토마스크를 만든다.
넘기기 전에 무엇을 검사하나?
모든 검사를 통과해야 넘길 수 있다. 이 관문을 흔히 사인오프(sign-off)라 한다.
- 제조할 수 있는가: 팹에는 배선을 최소 얼마나 가늘게 할 수 있는지, 두 배선을 최소 얼마나 가까이 둘 수 있는지 같은 설계 규칙이 있다. 설계 소프트웨어가 레이아웃을 규칙 하나하나와 대조하는데, 이를 설계 규칙 검사(DRC)라 한다.
- 그린 것과 기술한 것이 같은 회로인가: 레이아웃에서 회로를 거꾸로 추출해 원래 회로와 비교한다. 이를 LVS라 한다.
- 타이밍이 맞는가: 박자마다 신호가 다음 박자 전에 도착해야 하며, 가장 느린 경로가 칩의 최고 동작 속도를 정한다. 팹에서 만든 트랜지스터는 빠른 쪽이나 느린 쪽으로 치우치는데, 이런 치우침의 유형을 코너라 한다. 느린 코너에서도 타이밍이 맞아야 하고, 빠른 코너에서도 오동작하면 안 된다.
- 나중에 테스트할 수 있는가: 테스트용 회로를 미리 넣어 두어, 테스터가 칩 하나하나의 내부를 검사할 수 있게 한다(칩은 어떻게 테스트할까?).
테이프아웃(tape-out)이란?
검사를 모두 통과하면 최종 설계 파일을 팹에 넘기는데, 이를 테이프아웃(tape-out)이라 한다. 예전에는 설계 파일을 종이 테이프나 자기 테이프에 담아 넘겼고, 그 이름이 남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다.
테이프아웃 뒤에 고치려면 포토마스크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비용이 크고 몇 달을 더 기다려야 한다. 테이프아웃이 끝도 아니다. 칩이 만들어지면 정말 사양대로 동작하는지 테스트해야 하고, 문제가 있으면 설계를 고쳐 다시 테이프아웃한다. 테이프아웃과 웨이퍼 투입의 차이는 ‘웨이퍼 투입이란?’을 참고하면 된다.
아날로그 회로도 이렇게 설계하나?
완전히 같지는 않다. 아날로그 회로는 소리, 전압, 무선 신호처럼 연속적으로 변하는 신호를 다룬다(아날로그 칩과 디지털 칩은 무엇이 다를까?). 설계는 대체로 사람의 손이 더 많이 간다.
- 트랜지스터 하나하나의 크기와 연결 방식을 엔지니어가 직접 정하고, 회로 시뮬레이션으로 거듭 조정하는 경우가 많다.
- 레이아웃도 직접 그리는 경우가 많다. 아날로그 회로는 배치에 민감하다. 똑같아야 하는 두 트랜지스터는 대칭으로, 가까이 배치해야 하고, 옆에 잡음이 심한 회로가 있으면 간섭을 받기 쉽다.
자동화 도구도 발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경험에 크게 의존한다.
설계와 팹은 어떻게 협업하나?
설계는 팹이 만들 수 있는 범위에 맞춰야 하므로, 양쪽은 처음부터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 설계 시작 전: 팹은 설계에 쓸 파일 묶음을 제공하는데, 이를 흔히 공정 설계 키트(PDK, process design kit)라 한다. 설계 규칙, 트랜지스터 모델(보통 중간값과 몇 가지 코너), 검사용 규칙 파일이 들어 있다. 셀 라이브러리가 함께 들어 있기도 하고, 다른 곳에서 해당 세대 공정에 맞춰 따로 만들기도 한다.
- 테이프아웃 뒤: 포토마스크를 만들고 웨이퍼 투입을 한다. 새 칩의 첫 몇 로트는 시생산이다. 설계 쪽은 테스트 결과를 보고, 팹 쪽은 어느 공정 단계에 문제가 있는지 찾는다.
설계와 제조는 서로 다른 회사가 맡는 경우가 많다(뉴스에 나오는 IC 설계(팹리스), 파운드리, IDM은 무엇이 다를까?). 직접 설계하고 직접 만드는 회사도 똑같이 이 규칙을 따라야 한다.
fab24hr에서는
게임에는 칩을 설계하는 역할이 없고, 메인 스토리 ‘칩의 일생’은 테이프아웃 뒤에서 시작한다. 메인 스토리를 처음 플레이하면 먼저 프롤로그 ‘테이프아웃’이 나온다. 보청기를 만드는 작은 회사가 처음으로 직접 설계한 칩 ‘Glowmere’가 팹으로 넘어가 포토마스크 한 세트가 된다.
챕터 1 ‘12장을 어떻게 나눌까’는 웨이퍼 투입 전날이다. 플레이어는 R&D 라인의 개발 PIE 엔지니어다. 같은 설계라도 팹에서 만들면 반드시 편차가 생기므로, 초도 로트 12장 가운데 몇 장을 일부러 빠른 쪽, 느린 쪽으로 치우치게 만들어 설계가 버텨 내는지 본다(개발 PIE 엔지니어는 무슨 일을 할까?). 챕터 3 ‘불량의 모양’에서는 다음 버전 마스크가 다음 주에 확정된다. 칩 안에 자신의 TEG를 넣을 자리를 남길지 정해야 하지만, 그 면적은 고객의 것이다.
게임 속 회사, 칩, 인물은 모두 가상이다. 설계 흐름은 공개된 일반 자료를 바탕으로 썼으며, 회사마다 방식이 다르다. 다른 전문 용어는 ‘반도체 공장 전문 용어, 쉬운 말로 풀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게임에서 만나는 곳메인 스토리 ‘칩의 일생’을 처음 플레이하면 먼저 프롤로그 ‘테이프아웃’이 나온다. 보청기 칩 ‘Glowmere’의 설계가 팹으로 넘어가 포토마스크 한 세트가 된다. 챕터 1 ‘12장을 어떻게 나눌까’는 웨이퍼 투입 전날로, R&D 라인에서 초도 로트 12장을 어떻게 나눌지 정한다. 몇 장을 일부러 빠른 쪽, 느린 쪽으로 치우치게 만들어 이 설계가 버텨 내는지 본다.
fab24hr의 메인 스토리 ‘칩의 일생’에서 설계는 이미 테이프아웃을 마쳤다. R&D 라인에서 이 설계가 처음 만들어질 때 버텨 내는지 지켜본다.
챕터 1부터 시작하기: 테이프아웃 뒤의 초도 로트선생님께: 이 글은 ‘수업에서 fab24hr 활용하기’ 페이지와 함께 수업에 쓸 수 있어요.
이 글 인용하기‘칩은 어떻게 설계할까? IC 설계가 하는 일’, fab24hr, 업데이트. https://fab24hr.com/ko/blog/chip-design/
수업과 비영리 목적이라면 무료로 쓸 수 있어요. 화면에 띄우거나, 강의 자료에 넣거나, 학생들에게 인쇄해 나눠 줘도 괜찮아요. 출처(fab24hr)를 밝혀 주세요. 판매하거나 자기 작품으로 바꿔 내놓는 것은 안 돼요. 오류가 있다면 문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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